'이산 유제양 선생' 문집 발굴 - 구한말 지식인 사상 조명

입력시간 : 2004. 05. 21. 00:00


전남대 호남한문학연구회 수집
전원시 대부분·시대상 반영도
구례 인문·지리…문학적 묘사

호남의 대표적인 양반가옥인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중요민속자료 제8호)의 주인인 이산 유제양 선생(1846~1922)의 문집 ‘이산시고(二山詩稿)’ 4권 4책이 발굴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20일 전남대학교 호남한문학연구회(연구책임자 김대현 전남대 국문과 교수)에 따르면 지난 2002년 한국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인문사회분야 기초학문 육성 학술연구비를 지원받 아 ‘20세기 근현대 호남한문학 자료 조사 및 연구’를 진행하던 중, 이산 유제양의 증손 유종옥씨가 ‘이산시고’를 포함해 운조루에 보존되어 있던 유물 대부분을 국립 중앙도서관에 기증하였다는 제보를 접한 뒤 최근 복사본을 입수했다.

이산 유제양은 일제의 침략을 통분해 자결한 매천 황현과 깊은 교유관계를 맺었으며 구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시작활동을 전개했던 인물. 유씨는 10대에 ‘효경’ ‘사기’ ‘사서’ 등을 읽었고 한·위·당·송의 여러 대가들의 시를 보며 근체시를 익혔고 황현·왕사찬 등과 함께 ‘호남아집’이라는 시창작 단체를 결성하기도 했다.

유씨는 또한 구한말 구례지방의 향론을 주도한 인물로서 구례지방의 구한말 향약조직인 ‘봉성향약’의 서문을 썼고, 운조루를 토지면의 면약소로 이용하게 했다.

이번에 발굴된 ‘이산시고’ 4권 4책은 필사본으로서 아직 간행되지 않은 유고다. 시고 3책은 각각 ‘천·지·인’이라고 제목을 붙였고, 시는 유씨가 직접 선발한 것으로 76세 때인 1921년 11월11일에 작업을 마쳤다고 되어 있다. 시는 모두 1,348수이고 구는 총 220구절이다. 나머지 1책은 ‘이산만필(二山漫筆)’인데, 권2만 남아 있는 결본이다.

‘이산시고’와 ‘이산만필‘ 등은 운조루 유씨가에 대한 문학적 연구는 물론이고, 유씨의 한시문에 나타난 산과 강, 누정, 풍물 등 구한말 구례 지방의 인문 지리를 문학적으로 맛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산시고’에는 구한말 격변기의 역사적 사건뿐만 아니라 구례를 중심으로 매천 황현 등과 같은 당대 문인들의 교유시가 상당수 수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당대의 실상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한말 향촌 지식인의 의식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수록된 유씨의 시는 섬진강을 낀 구례 들녘을 바라본 전원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형적인 당시풍을 보여 주고 있다. 또 을사조약 때 비통하여 자결한 평양병정 김봉학에 대한 만시(輓詩)를 비롯해 ‘혈죽도’ ‘가탄’ ‘면암공만장’ ‘애고광순’ ‘황매천만’ 등을 통해 시대적 고민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창강 김택영 선생은 서문에서 “유씨의 시들은 청원하여 당시의 풍격을 엿볼 수 있다”며 “뒷날 구례 인사 가운데 ‘기구집’을 편찬할 사람이 있다면, 취할 것은 반드시 이런 시일 것이다”라고 칭찬했다.

현재 ‘이산시고’는 김대현 교수 책임하에 기태완 박중렬 김정환 등 연구자에 의해 해제, 번역 중에 있으며 연구가 종결되면 학술진흥재단 사업과 연계해 공개할 예정이다.

한편 유씨는 ‘시언(是言’이란 생활일기(1851~1922년)를 남긴 바 있는데, 이는 그의 손자 유형업의 일기(1898~1936년)인 ‘기언(記言)’과 함께 ‘구례 유씨가의 생활일기’라는 제목으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1991년에 번역된 바 있다. 이 ‘시언’과 ‘기언’은 조선말기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농촌생활상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는 유씨가의 소장 자료를 묶어 자료집을 발간한 바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운조루를 중심으로 한 건축사와 농촌문제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진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