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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기씨가 펴낸 \'전라도 정자기행\'

정자 문화를 통한 호남정신 탐색
김선기씨가 펴낸 '전라도 정자기행'


ⓒ 전라도닷컴
눈을 감고 가만히 '정자(亭子)'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그윽한 산자락에서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새소리와 시원한 계곡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생각날 것이다. 밤에는 은은한 달빛아래 대금소리에 시 한 수 읊조리는 낭만적인 곳. 거기에다가 곡차한잔이 추가된다면 그야말로 무릉도원의 세상이 바로 '정자'이다. 그러나 그런 상상을 하며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선입견은 곧바로 깨진다. 『호남정신 뿌리 깃든 전라도 정자기행』은 하나의 기행문이기도 하지만 정자마다 서려있는 역사와 조상들의 애환이 스며든 역사서이기 때문이다.

『전라도 정자기행』(보림 刊)의 저자인 김선기 기자(42·광주타임스 문화체육부장)는 정자의 낭만적인 부분을 배제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민족정신, 항일정신 등 조상들의 애국충정이 서려있는 정자들을 중심으로 취재했다고 밝혔다. 광주지역 일간지인 <광주 타임스>에 2000년 첫 주부터 시작하여 2002년 12월 마지막 주까지 3년 동안 총 108회 연재되었던 것을 책으로 발간하였다. 여기에는 광주를 비롯, 전라도의 22개 시·군을 저자는 박주하, 장복수 화가와 함께 직접 돌아다니며 취재했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정자는 하나마다 역사와 사연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곳도 있다. 우국충정을 기리는 애국지사들의 꿋꿋한 지조와 향촌선비들의 소박한 열정을 보고 있노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동안 산 속에 혹은 동네 어귀에 우두커니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것이 아닌, 전라도 정자는 조선시대에 처사적 야인의 길을 걸었던 선비들이 남긴 '의향(義鄕)'이라고 부르는 호남정신의 뿌리가 깃들어 있는 소중한 자산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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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선기
ⓒ 전라도닷컴
저자는 소풍가는 기분으로 편안하게 취재했다고 말했지만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결코 쉽지 않은 취재였음을 여실히 알 수 있다. 그는 "각종 고문헌을 뒤적여가며 정자마다의 특징과 역사적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작업이었다. 몇 번인가 도중에 하차하고 싶은 마음이 목젖까지 치밀어 올랐다"고 저자후기에서 고백하고 있다.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정자는 그 속성상 대부분 산 속에 있다. 봄철에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뱀한테 혼이 나기도 했고 담양의 '상월정'을 찾아갈 때는 숲길을 헤치다가 벌집을 잘못 건드려 벌들의 집중공격을 받은 적도 있었다며 취재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하나둘씩 풀어놓았다.


그러나 이런 고생스러움의 이면에는 정자기행의 알콩달콩한 즐거움도 가득하다고 말한다. 그는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여름에 정자에서 막걸리 한잔을 마시며 목을 축였던 그 기막힌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또한 향토사학자나 촌로들에게 물어물어 세월에 묻혀있던 정자를 찾아낼 때의 보람과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특히 가장 보람된 것은 바로 "정자기행을 하면서 새로운 역사적 가치들을 발견하게 된 기쁨"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정자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모든 것이 자신에게 소중하게 다가왔다"며 특히 "담양의 '독수정(獨守亭)'이 인상깊고 관심이 갔다"고 말했다. 모든 정자가 남향(南向)인데 반해 '독수정'은 유일하게 북향(北向)이다. 고려 말 충신인 서은 전신민(瑞隱 全新民) 선생은 '신하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不事二君)'며 이성계의 회유를 거부하고 매일 아침 조복(朝服)을 입고 북쪽에 있는 송도를 향해 곡배(哭拜)를 올린 곳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치판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이익이 있으면 지조도 없이 휩쓸려 버리는 철새정치인들이 진정으로 본받아야 할 선비"라며 요즘 정치세태를 꼬집기도 하였다.

영암에 있는 '이우당(二友堂)' 역시 남다른 곳이다. 이 곳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필인 한석봉 선생의 스승이 머물렀다. '이우당'에서 영계 신희남(瀯溪 愼喜男) 선생은 제자인 한석봉을 가르쳤지만 그런 사실은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그는 "우리는 한석봉 선생이 명필인 것만 알고 있지 정작 그를 가르쳤던 스승이 누구인지는 거의 모르고 있으며 아예 관심조차 없다. 한석봉 선생이 명필이 된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었겠느냐?"며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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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닷컴

다른 지역에도 이렇게 정자가 많이 있느냐는 물음에 저자는 의외로 많지 않다고 말한다. 유독 전라도 지방에 정자가 많이 있는 이유는 바로 유배지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조선시대에는 당쟁이나 사화로 인해 권력자들로부터 중죄를 받았던 선비들은 '천리귀양'을 보내기도 하였는데 바로 전라도 지역이 한양에서 천리 떨어진 곳이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권력과의 타협을 거부했던 선비들이 은둔하여 학문을 펼치고 사상 및 시가 싹튼 곳이 바로 전라도이다. 이런 배경들로 인해 정자를 많이 만들게 되었고 이것은 결국 호남정신의 뿌리가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김선기 기자의 세심하면서도 소슬한 글감도 맛볼 수 있다. 책 속에는 사진뿐만 아닌 3년 동안 정자기행을 함께 한 박주하, 장복수 화가의 그림도 곁들여져 있다. 또한 정자와 관련된 한시도 음미할 수 있어서 한시를 좀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전라도 정자기행』은 향토 역사서이자 기행문이다. 책을 짚어보면서 가족들과 함께 가장 가까운 정자에 한번 둘러보는 것도 소중한 공부가 될 것이다. 박물관에 전시되고,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만이 소중한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주변에 있는 문화유산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것은 곧 역사와의 대화이자 후손과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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